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천학, 날다/유헌시조시인 중앙일보 2020년 3월 초대시

상봉鷞峰 윤갑현 2020. 3. 26. 09:53


유 헌
2011년 월간문학 시조 신인상, 한국수필 신인상.
201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시조집  『노을치마』『받침 없는 편지』


천학, 날다

-유헌
 
잉걸불 입에 물고
열반에 들었는지
 
태토(胎土)는 말이 없고
새소리만 요란하다
 
상처가 상처를 보듬는
옹이 같은 만월 한 점
 
천 년 전 왕조가
다스린 불의 비사
 
물레에 칭칭 감긴
밀서를 펼쳐 들자
 
일제히 흰 깃을 치며
날아가는 새떼
  
    
   
 
이 시조 한 편을 읽으면서 나는 전신이 긴장되고 신경은 곤두서고 감각은 예민했다. 열반, 태토, 만월, 비사, 밀서 등의 고풍스런 시어가 여기서는 반상의 묘수를 보듯 오히려 고답하지 않아 좋다. 초장과 중장 사이, 중장과 종장 사이에 각성의 파장이 넘실거리고, 1연에서 2연으로 건너가며 장강을 흐르는 시간의 깊이를 보여주니 좋다. 시어는 생경하되 비화를 품고 있고 천년을 흘러 온 시간은 요란하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색은 적요하다.
 
1연 초장의 ‘잉걸불’과 2연 초장의 ‘불의 비사’는 시어를 배치하는 시인의 전략이다. 불은 도공의 열정이 빚어내는 도예 장인의 내공을 상징한다. 도예가의 손과 발을 거친 태토는 말이 없어도 요란한 새 소리를 듣게 하고 상처를 보듬는 만월을 보게 한다. 장인의 손으로 빚어내는 ‘열반’과 ‘만월’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을 관통하고, 화자는 눈을 감고 이 모습을 지켜본다. 2연은 1연의 ‘태토’를 뛰어 넘어 시인의 상상력이 우주의 시간으로 펼쳐진다. 한 점 도예 작품 앞에서 ‘천 년 전 왕조’로부터 지금 눈앞에서 ‘일제히 흰 깃을 치며 날아가는 새떼’에 이르기까지 화자가 품고 있는 ‘비사’와 ‘밀서’는 천 년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상처는 ‘잉걸불 입에 물고 열반에 들’때까지 ‘비사’에 담겨지고 ‘밀서’에 기록된다. 그렇게 남겨지는 상처는 ‘만월’이 상징하는 용서와 화해로서 보듬고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창공을 ‘날아가는 새떼’들이 장강의 깊은 시간을 건너려면 더 많이 사색하고, 더 겸손하게 살아가야 하리라. 물레를 돌리는 장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더 부드러워지는 태토처럼! 

김삼환 시인    

미스터 트롯  임영웅/마량에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