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이은봉 한 번만 / 이은봉(李殷鳳) 달 뜨는 어느 봄밤이었네 숲속 나무벤치 위 그녀와 함께 앉아 있었네 시원한 바람 너무 좋아 은근슬쩍 그녀의 손 잡았네 자꾸만 가슴이 들떠 올랐네 촉촉해진 손 더 꼭 잡은 채 안절부절 못하다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네 한 번만 만져 봐도 돼 그녀가 내 허벅지를 꼬집으며 어깨에 기댄 채 말했네 뭐라고, 한 번 만이라고 그녀는 부푼 제 가슴 내 작은 손 안에 들이밀었네. ―웹진 『시인광장』(2020년 8월호) 상봉의 추천시학 2020.09.10
아내의 젖을 보다/이승하 아내의 젖을 보다 / 이승하 나이 쉰이 되어 볼품없이 된 아내의 두 젖가슴이 아버지 어머니 나란히 모신 무덤 같다. 유방암이란다 두 아이 모유로 키웠고 내가 아기인 양 빨기도 했던 아내의 젖가슴을 이제 메스로 도려내야 한다 나이 쉰이 다 되어 그대 관계를 도려내고 기억을 도려내고 그 숱한 인연을 도려내듯이... 암이 찾아왔으니 암담하다. 젖가슴 없이 살아야 할 세월의 길이를 생명자가 있어 잴 수가 있나 거듭되는 항암 치료로 입덧할 때처럼 토하고 또 토하는 아내여 그대 몇 십 년 동안 내 앞에서 무덤 보이며 살아왔구나 두 자식에게 무덤 물리며 살아왔구나 항암 치료로 대머리가 되니 저 머리야말로 둥그런 무덤 같다. 벌초할 필요가 없다. 조부 무덤 앞 비석이 발기된 내 성기 닮았다. ―계간 『서정시학』(200.. 상봉의 추천시학 2020.09.10
봄날의 단상/최한선 봄날의 단상 최한선 내 어찌 봄 앞에서 가난과 인내를 말하랴 동토의 암흑과 북풍의 혹한을 이기고 연둣빛 신부를 맞아들여 대 가족을 이룬 그대 봄볕을 보면서 나의 인색함을 뉘우친다 어쩜 저리 골고루 나누어 비춰주는지 천지에 신방을 차린 봄꽃의 혼례식이여 『우리말 임종 앞에서.. 상봉의 추천시학 2019.11.18
왕궁리에서 쓴 편지/정진희 왕궁리에서 쓰는 편지 정진희 내 맘속 풀지 못한 그리움 하나 있다 잊히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풍탁에 바람을 걸어 그림자로 늙어간들 차오르는 달빛조차 감당할 수 없을 즈음 잘 생긴 탑하나 조용히 옷을 벗는다 손길이 닿기는 했을까 차마 못 지운 떨림 하나 아, 미륵의 땅 .. 상봉의 추천시학 2019.11.18
별도 달도 자고가는 함등재/장태창 장태창시인님께서 집에 다녀 가신 후 시집과 별도 달도 자고가는 함등재/시편의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 어떤 황금보다 더 소중한 장시인님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손님으로 오셔서 솔선수범 하시는 장시인님의 사모님이 벼려 깊음까지도 착한 둘쩨 아들의 믿음직 스럽고 참 바르게 성장.. 상봉의 추천시학 2019.08.20
금이빨 삽니다./박종영 금이빨 삽니다 -박종영 오늘 아침, 빠진 금이빨 두 돈을 주머니에 담고 금이빨 산다는 복덕방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니 눈앞에 청보리 뒤엉킨 고향 보리밭이 봄바람에 물결친다. 궁핍함이 시급한 지금, 살아오며 겪은 희망, 추억, 가난의 분노가 시험하는가? 마음이 두근거린다 가시밭길 .. 상봉의 추천시학 2019.03.16
12월의 촛불 기도/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 ♱12월의 촛불 기도 향기 나는 소나무를 엮어 둥근 관을 만들고 4개의 초를 준비하는 12월 사랑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우리 함께 촛불을 밝혀야지요? 그리운 벗님 해마다 12월 한 달은 4주 동안 4개의 촛불을 차례로 켜고 날마다 새롭게 기다림을 배우는 한 자루의 초불이 되어 기도.. 상봉의 추천시학 2018.12.10
사랑법/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에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 상봉의 추천시학 2017.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