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의 추천시학 13

한 번만/이은봉

한 번만 / 이은봉(李殷鳳) 달 뜨는 어느 봄밤이었네 숲속 나무벤치 위 그녀와 함께 앉아 있었네 시원한 바람 너무 좋아 은근슬쩍 그녀의 손 잡았네 자꾸만 가슴이 들떠 올랐네 촉촉해진 손 더 꼭 잡은 채 안절부절 못하다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네 한 번만 만져 봐도 돼 그녀가 내 허벅지를 꼬집으며 어깨에 기댄 채 말했네 뭐라고, 한 번 만이라고 그녀는 부푼 제 가슴 내 작은 손 안에 들이밀었네. ​ ​ ―웹진 『시인광장』(2020년 8월호)

아내의 젖을 보다/이승하

아내의 젖을 보다 / 이승하 나이 쉰이 되어 볼품없이 된 아내의 두 젖가슴이 아버지 어머니 나란히 모신 무덤 같다. 유방암이란다 두 아이 모유로 키웠고 내가 아기인 양 빨기도 했던 아내의 젖가슴을 이제 메스로 도려내야 한다 나이 쉰이 다 되어 그대 관계를 도려내고 기억을 도려내고 그 숱한 인연을 도려내듯이... 암이 찾아왔으니 암담하다. 젖가슴 없이 살아야 할 세월의 길이를 생명자가 있어 잴 수가 있나 거듭되는 항암 치료로 입덧할 때처럼 토하고 또 토하는 아내여 그대 몇 십 년 동안 내 앞에서 무덤 보이며 살아왔구나 두 자식에게 무덤 물리며 살아왔구나 항암 치료로 대머리가 되니 저 머리야말로 둥그런 무덤 같다. 벌초할 필요가 없다. 조부 무덤 앞 비석이 발기된 내 성기 닮았다. ―계간 『서정시학』(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