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짓는 누에
김강호
등단이란 알을 깨고 성큼 자란 누에가
한지 문에 얼비치는 초록 문장 갉아먹을 때
달빛이 쏟아지는 소리
방안 가득 차올랐다
설익은 시어들을 배설물로 쏟아내고
비울 것 다 비워서 더 비울 것 없는 날
마침내 섶에 올라가 시상에 잠겨있다
투명하게 잘 익은 생각의 정수리에서
은빛 시 풀어내어 시집 한 채 지어 놓고
숨죽여 열반에 든다
쭈그렁 늙은 부처
《율격》2019. 3호
숨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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