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의 추천시조

중뿔/정수자시조시인

상봉鷞峰 윤갑현 2020. 9. 18. 16:21

중뿔 / 정수자(수원)


나는 자주 졌다 절도 없이 망설이다

먼 길만 바라보다 겉늙은 장승처럼

세상에 지려고 왔나 편도 없이 멀거니

시르죽은 그늘로 제 우물만 파다 보면

우묵한 귓등께 중뿔이라도 솟는지

가없이 달뜨곤 하는 시업에 턱 걸렸으니

잡을 듯 고추잠자리 한 끗에 똑 놓치고

빈손만 타박하던 쑥대머리 언덕처럼

제 멋의 걸신에 씌어 쓸개까지 발린다만

시치미 못 떼치고 없는 뿔을 다듬어도

허기라는 양식은 긍휼의 오랜 언약

한세상 지기만 해도 지평을 끙 당긴다



ㅡ『시조미학』(2020, 가을호)

'상봉의 추천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기가 온다/임셩규시조시인  (0) 2020.10.23
불꽃/홍성란시조시인  (0) 2020.08.16
싸리꽃/최미선시조시인  (0) 2020.05.17
해남여자/이지엽시조시인  (0) 2020.04.04
시인/노영임시조시인  (0) 202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