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뿔 / 정수자(수원)
나는 자주 졌다 절도 없이 망설이다
먼 길만 바라보다 겉늙은 장승처럼
세상에 지려고 왔나 편도 없이 멀거니
시르죽은 그늘로 제 우물만 파다 보면
우묵한 귓등께 중뿔이라도 솟는지
가없이 달뜨곤 하는 시업에 턱 걸렸으니
잡을 듯 고추잠자리 한 끗에 똑 놓치고
빈손만 타박하던 쑥대머리 언덕처럼
제 멋의 걸신에 씌어 쓸개까지 발린다만
시치미 못 떼치고 없는 뿔을 다듬어도
허기라는 양식은 긍휼의 오랜 언약
한세상 지기만 해도 지평을 끙 당긴다
ㅡ『시조미학』(2020,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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