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량 벽송마을 출신, 국창 김채만 선생의 종손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 지정
지난달 12일 광주 서구 빛고을 국악전수관. 이곳에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고수(북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올해로 6회째 맞고 있는 ‘청암전국고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였다. 이날 대회는 명고부와 일반부, 청장년부, 입문부, 학생부로 구분해 열띤 경연이 벌어졌다. 올해는 처음으로 정부 시상 지원을 받는 대회로 격상되면서 교육부 장관상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이 각각 수여돼 경쟁이 치열했다.
청암은 바로 강진 출신 명고수 김성권(본명 김성래: 1943~2008) 선생의 아호다. 지난 91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그가 작고한 1년 후인 2009년 광주에 청암판소리고법보존회가 만들어져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강진에서는 차츰 잊혀진 사람이 되고 있지만 그의 예술성을 기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청암선생은 칠량 벽송마을 출신이다. 김동욱씨와 이초접씨 사이의 삼대독자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원래 곡성이 뿌리지만 완도를 거쳐 칠량으로 이사해 왔다고 한다. 칠량보통학교에 입학해 정규교육을 받았다. 벽송마을 청암선생의 집에는 소리와 가락으로 넘쳐났었다. 청암선생의 증조할아버지가 남도 서편제로 크게 명성을 떨쳤던 국창 김채만선생이었기 때문이다. 부친 김동욱씨도 소리를 했다.
김채만(1865 ~ 1911)선생은 심청가로 당대 독보적인 존재였다. 쉰 목소리와 같이 컬컬하게 나오는 수리성에 양성이 낀 성음으로 극단적인 서편제 판소리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47세로 죽어 그의 소리는 일부밖에 전승되지 못했다. 조선말기 아귀성으로 천하를 주름잡은 사람으로 꼽힌다. 아귀성이란 판소리 창법에서 목청을 좌우로 젖혀 가면서 힘차게 내는 소리를 말한다.
청암선생의 집안에는 자연스럽게 많은 국악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아버지 김동욱씨도 판소리로 유명인사였다. 부친 김동욱씨는 협률사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청암선생은 15세가 되던 해 증조할아버지 김채만선생의 고수였던 박선행 씨로부터 처음 북치는 방법을 배웠다. 원래는 소리를 배우려고 했으나 목소리가 여의치 않아 북을 잡았다고 한다.
박선행씨는 부친의 외숙이기도 했다. 예술활동을 통해 여러 가지 가족관계가 형성됐던 것이다. 증조부때의 인연으로 이후 보성소리의 산실이었던 정응민선생을 찾아 3년간 판소리 지도를 받기도 했다. 한국전쟁으로 군복무를 마친 청암선생은 광주로 이사해 호남국악원에서 명고수 성원목선생을 만나 본격적으로 판소리고법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김성권 선생이 생전에 북을 치던 모습이다. |
광주국악원을 운영했던 청암선생은 64년부터 정광수명창의 고수로 명동 국립극장무대에 서는등 중앙무대에서 활동에도 나섰다. 청암선생은 청암판소리고법보전회를 만들어 후진양성에 앞장섰다. 청암선생은 박시양, 송종호, 김명식씨등의 이수자를 두었고 관내 전수자들은 윤성렬, 고일석, 김현주등이 있다.
1990년 4월 21일 한애자 완창판소리 심청가발표회, 1991년 10월 29일 광주문예회관 개관기념 영호남 교류연주회, 그리고 12월 23일 광주국악관현악단 제3회 정기연주회 때 출연했다. 그해 11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91년 11월 2일 방성춘(房姓春)의 완창판소리 동초제 심청가발표회, 1992년 7월 3일 윤진철의 강산제 심청가발표회, 10월 22일 제12회 대한민국 국악제: 개막제 때 출연했다. 1993년 12월 12일 광주시민을 위한 국악대공연, 1997년 5월 21일 김향순의 완창판소리 수궁가발표회, 1998년 5월 16일 성우향의 완창판소리 춘향가발표회, 10월 24일 윤진철의 완창판소리 심청가발표회 때 고수였다. 그해 12월 2일 광주 남도예술회관에서 60년 북인생 사은의 무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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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청암전국고수대회 열띤 경쟁 최우수상에 박영식 씨
사단법인 청암판소리고법보존회와 광주불교방송이 주최한
제2회 청암전국고수대회에서 경기도 안성출신의 박영식씨가
일반부 최우수상인 광주시장상을 받았습니다.
광주가 낳은 판소리 명고수 청암 김성권 선생을 기리고
국악신예를 발굴하기 위해 마련한 이번 대회에서 박씨는
타 출전자에 비해 월등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박씨는 “최우수상을 받게 된 것은 그동안 지도해주신 정철호 스승의 덕분”이라며
“앞으로 더더욱 노력해 국악계에서 인정받는 최고 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중앙대 국악대학 음악극과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일반부 우수상인 광주시의회 의장상에는 이진수 씨 장려상은 김남우 씨가
각각 수상했으며 장년부에서는 최우수상에 조현숙씨 우수상 정응식 씨
장려상에는 모내훈 씨와 구복심씨가 각각 수상했습니다.
학생부 최우수상에는 대대호씨, 우수상 장려상에는 각각 임완섭,고현영,이수만,이진 씨가,
신인부에서는 조성완씨가 최우수상을, 우수상에 김태훈,장려상에 전혜자,소재심씨가,
중모리부에서는 김순곤 씨가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번 제2회 청암전국고수대회에는 전국각지에서 120여명이 참가해
열띤 경합을 벌였습니다.
[TV-ST]광주BBS, 제 7회 청암 전국고수대회 개최
호남의 명고수인 청암 김성권 선생의 예술정신을 기리고
참신한 국악 신인을 발굴하기 위한 제7회 청암 전국고수대회가
지난 20일 광주광역시 서구 빛고을 국악전수관에서 열렸습니다.
BBS광주불교방송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청암판소리고법보존회가 주관한 이번 대회에는
명고부와 일반부, 청·장년부, 입문부, 학생부 등 총 다섯개 부문에서
100여 명이 참가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겨뤘습니다.
경연결과, 명고부 대상인 국회의장상은 김상열 씨가 차지했고
학생부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에는
서울국립예술고등학교 박상훈 군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경연대회에 이어 전년 대회 수상자와 국악인들이 출연하는
축하 공연무대도 펼쳐졌습니다.
청암 김성권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로,
광주불교방송은 선생이 타개한 이듬해인 2009년부터
경연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습니다.
김성권 프로필
이름 | 김성권 | |
---|---|---|
한문 | 金成權 | |
영어 | [미등록] | |
아호 | 청암 | |
장르 | 무형문화재 | |
본적 | 전남 강진 | |
학력 및 경력 | 1926년 전남 강진 출생 1942년 칠량초등학교 졸업 1943년 일본 강산 상업고등학교 입학 1945년 귀국 1943년 박선행에게 판소리 고법 사사 1946년 정응민에게 판소리 심청가 사사 1955년 광주로 올라와 성원목에게 판소리 고법 사사 1960년 개인강습소 운영(계림동) 1964년 정광수 수행고수로 중앙무대 처녀출연 1967년 광주 호남예술학원 판소리 및 고법 강사 1973년 광주국악원 판소리 및 고법 강사 1982년 한국국악협회 국악공로상 1986년~2003년 전라남도 도립남도국악단 고수 1991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 보유자지정 2005년 동리대상 수상 청암판소리 고법보존회 설립 2008년 별세 | |
생애와 예술세계 | 전남 강진 출신의 국악인.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본명은 김성래(金成來)이며 호는 청암이다.
서편제의 소리 맥인 김채만의 종손으로 국악공연단체를 이끌어 왔던 김동욱의 2대 독자다. 부친 김동욱(1904~1944)은 완도출신으로 정정렬과 큰아버지 김채만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워 협률사라는 국악공연단체를 이끌어 왔다. 때문에 그의 집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명인명창들의 소리와 가락이 늘 끊이질 않았다. 김성권은 사랑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가락을 듣고 있노라면 어깨가 절로 들썩거렸다. 국창 김채만의 수행고수이며 아버지의 외숙인 박선행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그때부터 북치는 법을 가르쳤다. 이때가 열세 살인데 3년 동안 고법의 기초를 제대로 익혔다. 김성권는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학교를 다니다 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스무살 무렵에 보성 정응민에게 심청가를 배웠다. 당시 정응민 문하에는 아들 정권진 김연수 김순섭 박기채(朴基彩)도 공부하고 있었는데 주로 김성권이 북을 쳐주었다. 그 후 정응민의 아들 정권진과 함께 강진의 고성암으로 가 2년여 동안 소리를 연마하다 6ㆍ25전쟁이 나는 바람에 군에 입대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29세때 광주로 올라와 정광수에게 소리를 배우고 고수로 수행하면서 호남국악원에서 공대일, 성원목에게 고법을 배웠다. 김성권은 1964년 정광수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판소리 발표회에 수행고수로 참여해 김연수 명창으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김소희의 고수역도 거뜬히 해내어 중앙에서의 첫무대를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서울로 올라오라는 주문도 있었으나 뿌리치고 광주에 눌러 살면서 호남예술학원, 금호국악원 등에서 판소리와 고법의 강사로 활약하면서 서울과 부산 등지를 오가며 활약하였다. 김성권은 이후 판소리명창들의 소리를 녹음할 때 지정고수로 초빙되어 김소희, 조상현, 오정숙의 판소리 북 뿐만 아니라 김죽파 명인의 가야금산조에 장구를 치기도 하였다. 김성권은 1991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5회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지정을 받았으며 2005년 동리국악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광주에 청암 판소리 고법 보존회를 설립하고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제자로는 윤진철과 박시양의 두 전수 장학생과 전수자 김대규 등 세 후계자가 그의 북 가락을 전수받아 맥을 잇고 있다. |
판소리 고법 인간문화재 청암선생 전수자 나왔다 | ||||
윤성렬, 고일석, 김현주,임순종씨등 | ||||
판소리 고수 인간문화재 5호인 강진출신 청암 김성권(76) 선생이 전수자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
청암김성권 생애와 예술세계
숙명여대 좌장:정병헌 교수 발표자:목포대 이윤선교수
윤갑현 15.11.12. 10:26
윤갑현 15.11.12. 09:36
윤갑현 15.11.18. 14:38
윤갑현 15.11.18. 14:42
윤갑현 16.01.02. 12:10
윤갑현 16.01.06. 11:48
윤갑현16.03.10. 13:27
윤갑현 16.03.10. 15:30
강진군청 문화관광과 윤진희차장/강진군청 김송길선생님,강진일보 오기안기자,강진일보주희춘편집국장,
원남 윤도현도의원,청솔 윤명현 동백골한옥마을위원장,국악박시양선생,국악고일석님께 현재까지의 기록한 내용
카카오톡으로 전송함.
윤갑현 16.03.11. 13:24
부재중====>목포대 국문과 260-1702 ,핸드폰 010-xxxx-xxxx
이윤선교수님과 통화후 관련자료 카톡전송완료
윤갑현 16.03.11. 18:33
윤갑현 16.03.13. 09:49
청암 김성권 생애와 예술의 세계(동영상) 강진칠량 율변마을이 아니고 강진칠량벽송으로 박시양선생으로 하여금
증명된봐 좌장이신 정병헌교수님께 현재까지의 자료모음 카톡전송처리함.
윤갑현 16.03.19. 15:14
윤갑현 16.03.22. 18:43
윤갑현 16.03.25. 12:51
벽송마을 청솔당 옆에 동편샘(청암 김성권 선생 전수조교이신 박시양선생 벽송의 날 사진제공 (2016.3.26)
벽송마을회관 마을 앞에서 좌측 청암선생과 동행인 가운데 청암선생,우측은 벽송마을 고인되신 김석님,/ 박시양선생 벽송의 날사진 제공 (2016.3.26)
좌측부터 박시양선생,두분의 동행인,가운데 청암선생,고인되신 김석님,윤중현님,윤영모님,/ 박시양선생 벽송의 날 사진제공(2016.3.26)
윤갑현 16.03.27. 12:47
윤갑현 16.03.30. 15:04
윤갑현 16.03.30. 15:15
있도록 부탁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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