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의 추천시학

아내의 젖을 보다/이승하

상봉鷞峰 윤갑현 2020. 9. 10. 14:03

아내의 젖을 보다 / 이승하

 

 

 

나이 쉰이 되어 볼품없이 된

아내의 두 젖가슴이

아버지 어머니 나란히 모신 무덤 같다.

유방암이란다

 

두 아이 모유로 키웠고

내가 아기인 양 빨기도 했던

아내의 젖가슴을 이제

메스로 도려내야 한다

나이 쉰이 다 되어

그대 관계를 도려내고

기억을 도려내고

그 숱한 인연을 도려내듯이...

 

암이 찾아왔으니 암담하다.

젖가슴 없이 살아야 할 세월의 길이를

생명자가 있어 잴 수가 있나

거듭되는 항암 치료로 입덧할 때처럼

토하고 또 토하는 아내여

그대 몇 십 년 동안 내 앞에서

무덤 보이며 살아왔구나

두 자식에게 무덤 물리며 살아왔구나

 

항암 치료로 대머리가 되니

저 머리야말로 둥그런 무덤 같다.

벌초할 필요가 없다.

조부 무덤 앞 비석이

발기된 내 성기 닮았다.

 

 

 

―계간 『서정시학』(2008년 봄호)